
여러 법률 리서치 기관 집계에 따르면, 미국에서 진행 중인 AI 관련 저작권 소송은 2024년 말 약 30건에서 2026년 초 70건 이상으로 늘었다(집계 기준에 따라 편차 있음). 그 한복판에 있는 것이 엔트로픽(Anthropic)의 15억 달러(약 2조 원) 합의다. 그런데 이 합의는 흔히 짐작하듯 “AI 학습이 불법”이라는 판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학습 목적의 이용과 데이터를 확보한 방식을 구분해 판단했다.
AI 저작권 다툼은 크게 두 국면으로 볼 수 있다. 1막은 ‘무엇으로, 어떻게 학습시켰나’(학습 데이터), 2막은 ‘AI가 무엇을 만들어내는가’(결과물)를 둘러싼 싸움이다. 지금은 1막이 채 정리되기 전에 2막이 함께 열리는 형국이다.
1. 학습은 죄가 없다? - 1막이 남긴 구분
엔트로픽 사건(Bartz v. Anthropic)에서 엘섭(Alsup) 판사는 학습 목적의 이용이 변형 적 성격을 가진다고 보아 공정이용 판단에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이것이 “AI 학습은 언제나 공정이용”이라는 원칙 확립은 아니다. 공정이용은 사건별 판단이고, 대법원이 확정한 일반 기준은 아직 없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엔트로픽이 학습 데이터를 얻는 과정에서 해적판 전자책을 대량으로 내려 받아 보관한 부분이다. 법원은 이 취득 행위를 학습과 분리해 별개로 다뤘고, 이 쟁점이 이후 15억 달러 합의로 이어졌다. 이는 유무죄를 가린 본안 판결이 아니라 당사자 간 합의라는 점, 그리고 대상이 약 48만 권(권당 3,000달러가량)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모든 법원이 같은 방식을 쓴 것은 아니다. 이틀 뒤 나온 Kadrey v. Meta 판결(2025년 6월)에서 차브리아(Chhabria) 판사는 학습을 공정이용으로 보면서도, 다운로드와 학습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판단했다. 게다가 메타가 이긴 결정적 이유도 취득 방식이 아니라 원고가 ‘시장 침해’ 입증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판사는 이 결론이 해당 원고들에게만 적용되며 메타 행위가 합법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같은 시기 두 법원이 서로 다른 잣대를 든 것이다.
2026년 5월에는 엘스비어 등 출판사 5곳과 작가 스콧 터로가 메타와 저커버그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다. 소장(원고 측 주장)에 따르면 메타는 학습 데이터 확보 과정에서 대규모 저작물을 토렌트로 내려받고 IP를 숨겼다고 하는데, 이는 아직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 정리하면, 대법원 기준은 없고 법원마다 접근도 갈리지만 공통된 축은 하나다 - 학습의 정당성과 데이터를 손에 넣은 방식의 정당성은 별개로 다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2.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 질문은 실리콘밸리만의 것이 아니다. KBS·MBC·SBS 지상파 3사는 2025년 1월 네이버를 상대로 손해배상 및 학습 금지 청구 소송을 냈다(생성형 AI ‘하이퍼클로바X’의 무단 학습 주장). 이어 2026년 2월에는 오픈AI(OpenAI)를 상대로도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해, 국내 언론사가 글로벌 AI 기업을 상대한 첫 사례로 보도됐다.
공교롭게도 AI 기본법이 2026년 1월 22일 시행됐지만, 이 법은 산업 진흥·신뢰 확보·고영향 AI 관리가 중심이라 저작권법상 학습 데이터 이용 기준을 직접 규정하지 않는다. 결국 “AI 학습이 저작권 침해인가”의 답은 당분간 법원이 판례로 써나가게 됐다. 지금 AI를 쓰는 국내 기업이라면 피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3. 축의 확장 - 학습 데이터에서 결과물까지
여기서부터가 2막이다. IP·기술 분야에 강한 미국 대형 로펌 모리슨 앤 포어스터(Morrison Foerster)는 2026년 2월, AI 저작권 소송의 축이 “어떻게 학습시켰나”에서 “AI가 무엇을 만들어내는가”까지 넓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학습 데이터 이슈가 결과물 이슈로 대체된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축이 더해진 것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디즈니·유니버설이 미드저니(Midjourney)를 상대로 낸 소송이다. 원고가 문제 삼은 것은 학습 과정보다 모델이 스타워즈·심슨 같은 저작권 캐릭터를 그대로 재현해내는 ‘경향성’이다(역시 원고 측 주장). 실무적으로 이제 리스크는 “어떻게 학습시켰나”에 더해 “우리 AI가 무엇을 뱉어내는가”까지 넓어졌고, 생성형 AI로 콘텐츠를 만드는 기업이라면 산출물 단계 점검이 새 방어선이 된다.
4. 반대편의 질문 - 내가 만든 것은 내 것인가
소송이 ‘침해’를 다룬다면, 반대편에는 ‘소유’의 질문이 있다. 2026년 3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스티븐 탈러(Stephen Thaler) 박사의 상고를 기각(certiorari 불허)했다. 이는 본안 판단이나 새 원칙 확정이 아니라 하급심 결론을 그대로 두는 절차적 결정으로, 결과적으로 “저작권 보호에는 인간의 창작성이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다만 이는 미국 기준이며 국가별 판단은 다르다(한국도 인간 창작성을 핵심으로 보지만 AI 결과물 기준은 정립 중이다).
기업 실무의 함의는 분명하다. AI로 만든 자료·디자인·코드에 온전한 권리를 주장하려면 사람의 창작적 기여가 얼마나 들어갔는지가 관건이다. ‘인간의 손’이 최종 표현을 통제했는지가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5. 기업이 지금 점검해야 할 것
미국을 중심으로 판례가 사실상 업계 기준을 만들어가는 지금, 기업이 점검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학습 데이터 정책·라이선스 확인 - 이용하는 AI 모델의 학습 데이터 정책·라이선스·출처 정보를 확인·관리.
- 산출물의 권리 귀속 검토 - 생성물에 대한 사람의 창작 기여도를 기록으로 남김.
- 유사도 점검 프로세스 - 산출물이 기존 저작물과 실질적으로 유사한지 내부 검증.
- 계약·약관에 이용 범위 명시 - AI 학습·활용 범위를 명확히 규정(약관 다툼 예방).
- 소송·판례 동향 모니터링 - 국내외 주요 소송·판례를 지속 추적.
- AI 사용 이력 관리 - 모델·프롬프트·생성일·수정·승인자를 이력으로 관리.
- AI 서비스 약관 검토 - 입력의 학습 사용 여부, 출력의 상업적 이용 가능성, 책임 제한 조항 확인.
맺으며

AI 저작권 리스크는 더 이상 법무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습 데이터의 출처 관리, 산출물의 권리 귀속, 유사도 점검은 모두 제품·데이터 거버넌스의 문제로 넘어왔다. 1막의 쟁점이 ‘학습’이었다면 2막에는 ‘결과물’이라는 축이 더해졌다. 이제 기업이 던져야 할 질문은 두 갈래다 - 우리는 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했고, 우리 AI는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참고 자료 (출처)
Copyright Alliance, “What to Know About the $1.5 Billion Bartz v. Anthropic Settlement” - https://copyrightalliance.org/participating-bartz-v-anthropic-settlement/
Authors Guild, “What Authors Need to Know About the Anthropic Settlement” - https://authorsguild.org/advocacy/artificial-intelligence/what-authors-need-to-know-about-the-anthropic-settlement/
Association of American Publishers, “Publishers and Authors File Class Action Against Meta and Zuckerberg” - https://publishers.org/news/publishers-and-authors-file-class-action-lawsuit-against-meta-and-zuckerberg-for-willful-copyright-infringement-to-develop-llama-ai-models/
Holland & Knight, “Major Publishers Challenge AI Training Practices in Landmark Suit Against Meta” - https://www.hklaw.com/en/insights/publications/2026/05/major-publishers-challenge-ai-training-practices
Goodwin, “N.D. Cal. Judge Rules That Meta's Training of AI Models Is Fair Use (Kadrey v. Meta)” - https://www.goodwinlaw.com/en/insights/publications/2025/06/alerts-practices-aiml-northern-district-of-california-judge-rules
법률신문, “방송 3사, 오픈AI 상대 소송전…뉴스 무단 학습 저작권 침해” - https://www.law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6712
미디어오늘, “챗GPT가 뉴스 무단 이용…지상파3사, 오픈AI 상대 소송 제기” -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2582
Morrison Foerster, “AI Trends for 2026 - Copyright Litigation Shifts from Training Data to AI Outputs” - https://www.mofo.com/resources/insights/260210-ai-trends-for-2026-copyright-litigation
CNN Business, “Disney and Universal sue AI photo generator Midjourney” - https://www.cnn.com/2025/06/11/tech/disney-universal-midjourney-ai-copyright-lawsuit
Morgan Lewis, “U.S. Supreme Court Declines to Consider Whether AI Alone Can Create Copyrighted Works” - https://www.morganlewis.com/pubs/2026/03/us-supreme-court-declines-to-consider-whether-ai-alone-can-create-copyrighted-works
Copyright Alliance, “AI Copyright Lawsuit Developments in 2025: A Year in Review” - https://copyrightalliance.org/ai-copyright-lawsuit-developments-2025/
CMS, “Artificial Intelligence and Copyright Case Tracker” - https://cms.law/en/int/publication/artificial-intelligence-and-copyright-case-tracker
국가법령정보센터,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 - https://www.law.go.kr/lsInfoP.do?lsiSeq=268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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